흡혈귀
흡혈귀는 자신의 시간을 거부함으로써 죽음을 이긴다. 훔친 기억으로 신체를 보존하며, 거울이 기록 보관소가 되고 다른 사람의 과거가 음식, 무기, 유산이 될 수 있는 문화를 만든다.
타인의 것으로 빌린 삶
아우렐리온의 흡혈귀를 보통 의미의 피를 마시는 존재로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. 결정적인 행위는 개인적 시간을 의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. 인간의 삶은 정상적으로 신체를 통과해 앞으로 흐르고, 기억을 남기고, 선택을 가능하게 하며, 영혼으로 이어질 수 있다. 흡혈귀는 그 흐름을 끊는다. 신체는 남지만 자기 시간이 더 이상 살아 있음의 일을 수행하지 않는다. 연속성은 타인에게서 빌린 것, 특히 기억과 경험, 회상이 실어 나르는 시간적 물질로 유지된다. 밖에서 보면 불멸처럼 보일 수 있지만, 코덱스가 이를 언데드로 분류하는 이유는 바로 그 겉보기 연속성이 원래 개인적이어야 할 것을 대체한 대가로 구매되기 때문이다.
이 때문에 흡혈귀 문화는 단순한 포식보다 기록 보관의 성격이 강하다. 성에는 거울이 가득하지만 그것들은 주로 반사상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훔친 회상을 보존한다. 신앙 편람은 더 나아가 ‘기억’ 자체를 그들의 신으로 묘사한다. 씨족 지부는 축적된 경험을 힘으로 저장하는 ‘거울 기록고’를 조직한다. 전쟁에서 그 힘은 불덩이나 되살아난 시체처럼 보일 필요가 없다. 흡혈귀는 경험을 훔치고, 지도자의 의지를 약화시키고, 이름 없는 맹세를 강요하며, 야전에서 군대를 격파하지 않고도 지휘력을 제거할 수 있다. 흡혈귀의 공포는 단지 죽을 수 있다는 데 있지 않다. 삶이 왜 중요했는지 알던 자기 일부가 빼앗긴 뒤에도 계속 걸어 다닐 수 있다는 데 있다.
귀족과의 연결도 똑같이 중요하다. 출처는 흡혈귀를 백왕 시대의 젊은 민족이라 부르지만, 벨미르의 기억된 사건 가운데 하나인 ‘피의 결혼식’은 한 공작이 흡혈귀가 되어 영원한 결혼을 선택했다고 전한다. 그 사건 뒤 백왕의 여러 귀족 가문이 밤의 씨족과 묶였다고 한다. 이는 흡혈귀화를 엘리트의 사적인 유혹으로 만든다. 혈통과 조상의 기억을 공개적으로 수호하는 귀족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문자 그대로의 기억 도둑질로 그 혈통을 보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. ‘검은 거울의 밤’은 이 연관을 더 깊게 만든다. 벨미르 전역에서 거울이 깨졌고, 이후 일부 가문은 반사상도 조상에 대한 기억도 없이 산다고 전해진다.
아우렐리온의 철학 문헌은 이 분류를 편안하게 두지 않는다. 형식적 대순환 표는 흡혈귀의 의지가 환상이며 개인적 시간을 버린 순간 영혼을 잃었다고 한다. 그러나 후대의 ‘오류의 민족’ 논쟁은 누구의 기억을 흡수할지 선택하는 행위 자체가 선택의 한 형태일 수 있는지 묻는다. 이 질문이 존재론을 뒤집지는 않지만 그 아래의 도덕적 문제를 드러낸다. 기억을 고르고, 음모를 꾸미고, 씨족을 사랑하며, 수세기의 기억을 큐레이션할 수 있는 존재라면 어느 지점부터 인간의 언어는 망가진 기계를 묘사하는 것을 멈추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묘사하기 시작하는가?